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알아줬으면...

공지사항 24.01.09
저는 지난 10년간 양평의 시댁에서 외롭고 고립된 투쟁을 하며 버텼습니다.

부양의무를 다하지 못는 남편과 종교에 심취한 시어머니 , 장지에서의 육아는 지난 혼인기간 내내 다툼과 상처를 만들었지만 그 굴레 속에서 저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저의 친모라는 영혼에 빙의되어 제와 제 친모를 욕보일때도,
남편이 이 정도 돈에 너를 데려왔으면 싸게 먹힌 편이라며 저를 폄하할때도,
시어머니 돌아가시면 이 큰 땅이 다 새색시 명의가 되니 부럽다던 시댁 식구들의 모욕적인 발언도,
종국에는 생활비를 일절 끊어 새벽마다 집 근처 물류창고에서 적재아르바이트를 하며 경제활동과 가사와 육아를 다 떠안았던 참담했던 마지막 1년도, 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어떻게든 내가 이곳에서 버텨야 아이를 지킬 수 있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살아냈습니다.
마지막 제 자존심의 보루였기에 늘 괜찮다고 잘 지낸다고 안부 전하던 25년지기 고향친구에게 혼인 이후 처음 울며 항간의 이야기를 고백했을때 '오죽했으면' 이라는 말을 듣고 저는 무너져버렸습니다. 버틸수가 없었습니다. 끝이 없는 것 같은 굴레 속에서 상처받고 상처 입히며 안타까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혼인기간 내내 저의 잘못은 1도 없다고 감히 생각지도, 말하지도 않겠습니다. 하지만 버팀의 끝인 작금의 저는 피의자의 신분이 되어 법정에 서야했고 노숙자가 되었으며 빚쟁이가 되었습니다. 우울및양극성신경장애와 수면장애로 정신과 약을 5년째 복용 중이며 이혼소송과 고소로 대인기피가 생겨 혼인 전 유일한 경력이던 병원 일 마저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23년 6월 12일 임시조치결정을 받고 카드빚만 떠안은채로 집에서 쫓겨난 이후 계속해서 노숙생활을 했고 지금도 렌트카에서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차에서 우두커니 있는 시간들이, 숨쉬는 1분1초가 괴롭고 눈물만 납니다. 충격과 실의로 그 무엇도 의욕이 없는 저를 잡고있는 단 하나의 끈은 아직도 엄마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 속삭여주는 저의 세상 하나뿐인 피붙이입니다. 일주일에 하루, 몇시간 정도 만날 수 있는 9살 나의 하나뿐인 혈육은 일련의 사건들로 구겨져버렸습니다. 임신과 출산과 육아에 전념하며 살아낸 저는 한 인간에게 평생의 죄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가장 온순한 청년을 이 시대가 투사로 만들어버렸다는 유시민의 항소글처럼 저는 미쳐버렸고 죄인입니다.

저는 평생을 미아로 살았습니다. 지금도 갈 곳을 잃은 미아인 저는 돈도 시간도 정신적 여유도 더는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증명해 내지 못한 10여년 동안의 저를 향한 지속적이고 악의적인 폭력을 이렇게나마 소리질러봅니다. 그래도 세상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던건 저의 정신과 주치의 선생님과 동네 편의점 사장님 내외분, 아끼고 아껴 남은 두 명의 제 친구들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작은 쉼터였던 그 분들께 감사하단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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