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딱 100만 원만 모으고 죽을 것이다

공지사항 24.03.08
아빤 내가 3살 때 집을 나가 생사도 모르고

엄마는 몇 번 집에 남자친구를 불러들이더니
히키코모리 백수 새끼 먹여살리는 거 지겹다고

새벽부터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남자친구와 함께 집을 나가더니
그 뒤로 4년째 아무 소식이 없다

내가 정확히 이 집에
은둔생활을 시작한 게 17살인데

새 학기 첫날
학부모 참관수업으로 온 우리 엄마는

꾸밀 줄 몰랐던 건지 직업병인지
새빨갛다 못해 시커먼 립스틱에
노출 있는 짧은 치마와 킬힐을 신고 참석했는데

그걸 본 애새끼가
너네 엄마 매춘부 아니냐는 한마디에
눈 돌아서 피떡 되게 패고
그 뒤로 내 방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왔다

ㅅㅍ 근데 나도 맞는 말이라 더 짜증이 났다

엄마가 나 몸 판다! 말은 안 했지만
엄마라는 인간이 전날 저녁에 출근해
담날 오전 6시에 짤랑 짤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술 떡 돼서 기어들어와

퇴근하며 함께 사 온 소주를 한 손에 쥐고
항상 내 방 앞에서 하소연을 한다

너만 아니었으면
새 삶 살고도 남을 내 인생 불행하다
낳고 싶지도 않았는데 덜컥 들어앉은 불행아라며

나는 그때마다 셀프로 내 목을 조른다

근데 또 죽을 용기는 없는 병신 쪼다 새끼라
이렇게 항상 살아는 있다

현재 나이 28
4년 전 엄마라는 인간도 날 버리고 나가고

그때부터 내 부모는 모두 죽었다 생각하고
집 보증금 300만 원 챙겨서 무작정 길거리로 나왔다

그 흔한 핸드폰 하나 없어서 모텔 달방 잡아두고
길거리에 보이는 아무 가게나 들어가
알바 써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

열 곳을 넘게 돌았는데
몇 년간 집에만 있어 꺼름한 내 모습이
의심스러웠는지 위아래로 몇 번 훑어보고는
차갑게 문전 박대 당하기 일쑤였다

생각해 보면 경력도 없고
행색도 거지 같은 날 누가 써주겠냐 싶어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둔 상하차에 들어갔고

힘들 거 알고 각오하고 들어갔는데도
ㅈㄴ게 힘들더라

땀 흘려 번 돈 12만 원 들고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가는데
꼴에 그것도 부모였다고
힘드니깐 생각이 난다는 게 _ㅈ같더라

그 흔한 가족사진 하나 없어서
그리워할 것도 없으니 참 다행이다 싶었다

한 일주일을
삼시 세끼 라면만 쳐 먹으면서 일 만 하니깐
갑자기 뭘 위해 이렇게 살고 있나 싶더라

불현듯 머리에 갑자기 죽자 죽어야겠다 싶어서
바로 동네 슈퍼로 달려가서 번개탄을 샀다

계산하고 슈퍼를 나서려는데 사장님이
학생 이상한 생각 하려는 거 아니지?
안색이 안 좋아 ~
오늘은 좀 힘들었어도 내일은 꼭 행복할 거야
그러니깐 힘내

이 한마디에
슈퍼 앞에 주저앉아서 몇십 분을 펑펑 울었다

사람 취급도 못 받고 살던 벌레 새끼한테
생전 처음 들어보는
너무도 따뜻한 말에 잠깐 흔들렸지만

이내 죽으면 편안해질 거란 근거 없는 망상에 휘말려 번개탄을 고이 들고 다시 숙소에 왔다

하지만 또 막상 죽으려니 죽을 용기는 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죽으려는 사람과 살려는 사람의 차이
그건 아마 꿈 미래 목표 이런 것들이 아닐까

그래서 나도 목표를 세워보기로 했다
딱 100만 원만 모으고 죽자
딱 100만 원만

그 100만 원을 다 모았을 때도 삶의 의미가 없다면 저 번개탄을 다시 꺼내기로 그렇게 다짐을 하고
다음날 눈 뜨자 마자 미용실로 달려갔다

어떤 스타일을 원하냐는 데
내 스타일은 집에서 대충 가위질하던 게 다라
그냥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해달라고 했다

뭐 말로는 투 클럭 일자 컷이라는데
다 끝나고 거울을 보니 ..
뭔 삼각김밥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쨌던

머리도 새로 하고 옷도 새로 사고 싶어서
주변에 괜찮은 옷 가게 없냐 하니

미용실 아주머니들께 입 모아 추천받은
동대문 구제시장에서 옷도 좀 사고하니
패션왕은 못되도 이제 좀 사람 됐구나 싶어서

피시방에 가서 구인공고 열심히 뒤지다 찾아낸
숙소 근방 양식집에서 주방보조 알바를 하게 됐다

그동안 어디 달아나있던 운들이
다시 자릴 찾아 돌아오는 건지

주방 보조라
끽해야 짬 처리나 설거지나 하겠거니 했는데

좋은 사장님 밑으로 들어와
좋은 기술도 많이 알려주시고

요리에 관심이 생겨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휴일엔 요리학원도 다니며
사장님 어깨너머로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나중에 내 가게 하나 차리자는 목표가 생겼다

눈물이 났다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먼일 같았던
꿈 미래 목표가 나에게도 생겼고
이젠 더 이상 죽고 싶지 않았다

일이 끝나자마자 당장 숙소로 달려가
서랍에 박아뒀던 번개탄을 꺼내 던져 버렸다

기쁨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사인은 음주 자살이라는데
이젠 슬프지는 않지만
장례는 따로 치르지 않았기에 화장터에서
그간 사느라 고생 많았고
수고했단 한마디 남기고 왔다

원하지 않았던 아이가 나왔지만
그래도 키워주느라 수고했어

그간 힘들었던 기억 모두 이승에 남기고
저승 가서는 두 다리 쭉 뻗고 편하게 주무세요 엄마

언제 들었는지도 모르는 엄마가 남기고 간
사망보험금으로 나는 작은 가게를 차리고
개업할 때 꿈꿨던 대박 나는 장사는 아니지만

먹고 살 만큼의 수익에 우리 가게 바로 옆
카페 사장님과 눈 맞아서 내년 초에 결혼도 합니다

고마운 분이 한분 있다면
그 당시에 제정신이 아니였어서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슈퍼 사장님이
남기신 따뜻한 한마디에 여기까지 왔고
너무 감사해서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 찾아가니

이미 그 가게는 없어지고
다른 가게가 들어서서 여쭤보니
몸이 갑작스럽게 안 좋아지셔서
장사 접고 시골로 내려가셨다네요

그날 사장님 덕분에 저 잘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사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몸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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